107건 중 풍해 44건, 수해 30건, 가뭄 23건, 동해 10건
우리나라도 전 세계 진행된 소빙기 영향...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몇 차례 걸쳐 이상저온 현상 폭설 한파 피해
‘증보문헌비고’ 기록 전국 이상기후 통계보면 17세기 35%, 19세기 24%, 18세기 16%, 16세기 14%, 15세기 11% 순

지난 2019년 태풍으로 인한 폭우로 침수된 농경지 모습.(사진제공=고동휘 기자)

제주도내 1392~1910년 사이 이상기후 기록현황 결과 풍해(風害) 44건, 수해(水害) 30건, 한해(旱害, 가뭄) 23건, 동해(凍害) 10건 등 총 107건으로 집계됐다.

시기별로 17세기가 46건으로 가장 많고, 18세기 23건, 16세기 14건, 15세기 13건, 19세기 11건의 이상기온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 단순한 기후상태가 아니라 인간과 동식물에 피해를 준 이상기후 현상을 집계한 결과다.

이는 김오진 박사의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와 문화’에서 밝힌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탐라기년’ 등을 토대로 작성한 결과다.
 
강풍 관련 기록 44건 중 42건은 재해 내용이 기술되어 있고, 나머지 2건도 ‘다섯 마리 용이 승천했다’, ‘큰 바람이 불었다’고 기술되어 있어 용오름과 강풍으로 피해가 발생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가뭄 관련 기록 23건 중 19건은 재해 내용이 구체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나머지 4건은 ‘6개월 동안 가뭄’, ‘여름에 큰 가뭄’, ‘석 달 동안 심한 가뭄’, ‘윤 2월부터 5월까지 가뭄’ 등으로 기록되어 있어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가뭄 피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의 이상기후 발생 추이를 살펴보면, 15세기에는 후반기보다 전반기에 이상기후가 많이 발생했다. 16세기 중반부터 이상기후 발생 빈도가 점차 증가했으며 17세기에 접어들어 대폭 증가하고 있다.

18세기에도 발생 빈도가 높게 나타났고, 19세기에는 감소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17세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강풍, 호우, 가뭄 등 각종 이상기후 발생 빈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파의 10건 중 6건이 17세기에 집중되어 17세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한랭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제주도의 기후변동을 분석해 보면 이상기후가 특히 심했던 시기가 있다.

제주도의 이상기후 집중기는 크게 세 개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제1기는 1510년대부터 1570년대까지로 풍수해와 가뭄이 많이 발생했고, 황충(蝗蟲) 피해를 입기도 했다. 제2기는 1600년대부터 1690년대까지로 풍수해가 많이 발생했고, 특히 이상저온 현상이 심해 폭설 및 한파로 인한 피해가 많았다.

제3기는 1710년대부터 1790년대까지로 빈번한 이상기후로 기근이 자주 발생했다. 이와 같은 제주도의 기후변동은 그 당시 전 세계를 강타했던 소빙기 기후와 연관되어 있다.

우리나라도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소빙기의 영향을 받아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몇 차례에 걸쳐 이상저온기가 있었음을 여러 학자가 제시하고 있다. 1500년대부터 1890년대까지 이상저온기가 전개됐다.

17세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이상기후 현상이 가장 빈번하게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눈, 추위 같은 이상저온 현상을 보여 주는 기록 건수는 타 시기에 비해 많다. 이것은 17세기가 매우 추웠음을 의미한다.

‘증보문헌비고’에 기록된 전국의 이상기후 통계를 보면 17세기가 35%로 가장 많고, 19세기 24%, 18세기 16%, 16세기 14%, 15세기 11% 순이었다.

17세기 기후상황을 고찰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김상헌의 ‘남사록’에 기록된 일기를 들 수 있다.

김상헌의 일기는 당시 제주도의 기후상황을 소상하게 기록하고 있어 편년체 사료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유용한 기후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김상헌의 129일에 대한 제주도 체류기간 중 맑은 날은 26%인 34일에 불과하고, 74%인 95일은 흐리거나, 비, 눈, 안개로 궂은 날씨를 보였다고 적고 있다.

그의 일기 중 바람에 대한 기록이 특히 많다. 제주 도착 후 연일 강한 바람 때문에 업무에 차질을 빚었고, 우도 순시도 포기했다. 1월 10일에는 화북포에서 관선이 육지로 출항했다가 강풍으로 침몰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가 왔던 1601년은 날씨가 추웠다. 이미 10월 25일에 첫눈이 내렸고, 11월에 눈이 두 차례나 내렸다. 12월 24일부터 27일까지 나흘 동안 강풍을 동반한 폭설이 내렸다.

김상헌은 10월에 제주도에 와서 다음해 2월에 떠났다. 129일의 체류 기간동안 3광[해·달·별]을 볼 수 있었던 날은 수십 일에 불과했다. 이 시기는 하절기에 비해 비가 적게 오고 맑은 날이 비교적 많을 때이다. 그러나 1601년 가을부터 1602년 봄까지는 항상 흐리고 비와 눈이 잦았다. 이러한 날씨를 당시 제주인들은 ‘근고에 없는 재변’이라고 말하고 있다.

1601년에 제주도에서 나타난 ‘근고에 없는 재변’은 그해 지구 곳곳을 강타했던 이상기후의 출현과 시기적으로 유사하다. 제주도에만 기후재변이 나타났던 것이 아니라 그해 북반구 여러 곳에서 심각한 이상저온 현상이 전개되었다.

제주도의 이상기후 현상은 1604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1602년은 이상저온 현상과 황사로 흉년이 발생해 기근이 심각했다.

1603년에는 한파로 감귤이 심한 동해를 입었다. 여름에는 풍해와 수해가 극심했고 충해까지 번져 흉년이 심각했다. 국영목장의 우마들은 먹을 풀들이 없어 많이 굶어 죽었다.

1604년은 풍해와 가뭄이 심각하여 흉년이 이어졌는데 육지의 곡식들을 이송해 제주도 기민을 구제했다.

17세기 제주도의 주요 이상기후 현상은 대풍, 폭우, 가뭄, 대설 등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이것이 재해로 이어져 수많은 인명과 재산에 많은 피해를 주었다.

한편 조선시대 지방관들은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조정에 보고하는 것이 중요한 책무였지만 제주가 섬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보고가 누락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

또한 보고서를 올려도 제주도에서 한양까지 가는 데는 보름에서 한 달 정도 소요됐기 때문에 조정에서 다루는 중요 현안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39년 9월 8일 기록에 “제주, 대정, 정의에 큰 바람이 불어 민가 2천 호가 무너지고 많은 사람들이 압사했으며, 우마 400여 필이 죽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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