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유럽 등 전 세계 진행된 소빙기와 유사한 이상저온 현상 전개 입증”
중산간 물 귀해..‘물허벅’ 팽나무 같은 거목 ‘새’ 매달아 물 얻는 생활문화도 만들어져
기후영향작물 감귤 임금 진상품...감귤 안정적 확보 남해안 옮겨 심었으나 열매맺지 못해
나종일 ‘증보문헌비고’ 17세기 농업재해 주요인 한해(旱害), 수해-풍해-냉해 피해도

김상헌은 ‘남사록’에서 제주도의 기후특성를 기록했다. 또한 조선시대 기록에는 제주도 내의 지역 간 기온 차이도 언급하고 있다. 이원진은 ‘탐라지’에서 “제주목은 한라산 북쪽에 위치해 남쪽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을 한라산이 막아 주고, 북서풍이 습한 열기를 흩어지게 해 더위가 덜하기 때문에 한라산 북쪽(산북)이 남쪽(산남)보다 장수자가 많다”고 했다.

한라산 남쪽은 습하고 더운 데 반해 북쪽은 이러한 장기(瘴氣, 축축하고 더운 땅에서 생기는 독기)가 덜해서 사람들이 오래 산다고 했다. 이는 옛 기록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제주도의 기후는 온대기후로 특히 겨울철 평균기온이 서울 등과 비교해 8.1℃가 따뜻한 기후를 보이고 있다. 이는 제주도가 대륙의 찬 고기압의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이다.

이는 옛 고서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도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소빙기와 유사한 이상저온 현상이 전개된 사항도 입증됐다.

바람은 제주주민 생활에 많은 영향을 줬고 특히 태풍과 겨울 계절풍의 영향이 컸다. 임제는 ‘남명소승’에서 제주도의 바람특성을 “한라산 북쪽에는 항상 북풍이 많다. 팔방위의 바람 중에서 북쪽이 가장 세찬까닭에 제주 경내의 나무는 모두 남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강풍이 불 때는 해수 입자가 육상으로 날려 농작물과 식물에 조풍해를 입히고 있다”고 밝혔다.

바람이 강한 지역에서는 편향수를 흔히 볼 수 있다. 한라산 북사면 해안지역에 있는 나무들은 모두 남쪽을 향해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북풍이 강한 지역임을 의미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탐라지’ 등에는 강풍에 의한 사빈과 해안사구의 발달과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겨울철 월평균 풍속은 제주가 4.3m/s, 고산은 9.5m/s이지만 서귀포는 3.5m/s에 불과하다. 겨울철 평균 폭풍일수를 보면 제주는 4.6일, 고산은 44일이지만, 서귀포는 0.2일에 불과하다. 특히 고산은 겨울철에 이틀에 한 번꼴로 강풍이 불고 있다.

효종 3년 9월23일 사료를 보면 “제주, 정의, 대정에 구풍(颶風)이 크게 불고 폭우가 사납게 내려서 말이 많이 죽고 백성들도 빠져 죽은 자가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여기서 구풍은 열대성 저기압, 즉 태풍을 의미한다.

태풍보다 강하지는 않지만 독한 바람이 있다. 가을부터 봄까지 지속적으로 부는 북서계절풍이다. 태풍은 여름철에 일시적으로 짧은 기간에 영향을 미쳤지만, 북서계절풍은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까지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었다. 겨울철의 북서계절풍은 강한데 다 매섭기까지 해 제주인들을 많이 괴롭혔다.

김상헌은 한라산 남쪽은 여름에 강수가 많고, 한라산 북쪽은 겨울에 눈이 많아 강수의 지역 차도 잘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강수특성은 오늘날의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연평균 강수량은 제주가 1천499mm이고, 서귀포는 1천924mm다. 제주도의 강수는 여름에 많고 겨울에 적다.

제주도의 강수현상에서 특징적인 것은 지역 차가 크다는 것이다. 고산지역의 연평균 강수량은 1천143mm로 서귀포 강수량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제주가 우리나라의 최다우지역이라는 것을 무색하게 하는 강수량이다.

특히 중산간 마을은 물이 귀했다. 물을 운반할 때는 ‘물구덕’에 ‘물허벅’을 넣어 지고 다녔는데, 주로 여자가 담당했다.

비가 올 때 집 울타리 안에 있는 감나무나 팽나무 같은 거목에 ‘촘새’를 매달아 물을 얻기도 했다. ‘촘새’라 불리는 띠로 댕기처럼 엮은 ‘촘새’를 나무와 항아리[촘항]에 연결해 빗물을 받아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이 물을 ‘촘물’이라 했는데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제주인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촘물’ 취수는 해안가 마을보다 중산간 마을에서 많이 이뤄지는 독득한 물 문화도 만들어졌다.

제주도의 풍토와 기후에 관한 초기 기록물로 김정의 ‘제주풍토록’을 들 수 있다. 김정은 제주도의 기후를 겨울이 혹 따뜻하고, 여름이 혹 서늘하나 일기변화가 심하다고 했다.

강한 바람과 예측하기 힘든 폭우, 고온다습한 날씨 때문에 생활하기에 불편함을 토로하고 있다.

기후와 관련된 작물로 감귤은 제주도의 특산물로 유명했고, 조선시대에 임금의 진상품으로 귀하게 취급됐다. 감귤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남해안의 여러 고을에 시험적으로 옮겨 심었으나 결국은 열매를 맺지 못했다.

한편 국내에서 김연옥은 ‘증보문헌비고’ 등을 통해 기후요소를 추출해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고기후 복원을 시도했다.

특히 소빙기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유럽 등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소빙기와 유사한 이상저온 현상이 전개되었음을 입증했다.

이태진은 ‘조선왕조실록’의 기상현상을 추출해 분류하고 각 기상현상의 발생 건수를 분석했다.

소빙기적 현상을 분석하는 데 이용한 기상현상은 우박, 서리, 때아닌 눈·비, 혜성·객성 출현 증가 등이다.

나종일은 ‘증보문헌비고’의 기록을 통해 17세기의 농업재해의 주요인은 한해(旱害)였고, 수해, 풍해, 냉해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이상배는 전근대사회에서 발생한 자연재해 가운데 백성들에게 직접적이고 광범위한 피해를 주었던 이상기후는 수해와 한해(가뭄피해)였음을 밝혔다.

김오진 박사는 “제주도는 이상기후로 인한 재해가 많이 발생했고 이것이 제주인의 생활과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며 “그러나 사료에 의한 제주도의 이상기후에 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또한 이상기후 등으로 인명과 재산, 심리적 피해가 컸던 만큼 과거의 이상기후에 관한 연구가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유럽기후는 전반적으로 1901~1960년 사이의 평균기온보다 낮았고 폭풍우와 대홍수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소빙기의 극심한 기후변동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고 농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유럽사회는 악마적 마법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었다. 소빙기 때의 잦은 이상기후를 마녀들의 음모라고 인식하기도 했다. 마녀들이 폭풍우, 한파, 가뭄 등 기상이변과 기근을 일으키고 있다고 간주해 소빙기 절정기인 17세기 유럽사회는 마녀사냥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것. 마녀사냥은 14세기부터 시작되어 17세기에 전성기였고, 18세기에 사라졌다.

Chang에 의하면 과거 500년간 중국에 4회의 추웠던 시기와 3회의 온난한 시기가 나타났다.

일본의 야마모토는 사료를 이용해 일본의 고기후를 분석한 결과, 소빙기적 기후현상이 일본에서도 전개되었다고 했다. 그 강도는 17세기가 그 이전인 15세기와 16세기, 그 이후인 18세기와 19세기보다 뚜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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