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노동자 조사결과” 377명 제주인 하리마조선소(播磨造船所) 64.79% 230명 투입돼
본적지 제주 65명, 한림 61명, 애월 42명, 남원, 대정, 중문 등도 20명 이상 동원
심재욱, “강제동원 제주인현황 일부 파악 매우 의의...지자체 차원 물론 국가 차원도 진행되지 않은 작업 가치 있어"

일본 후쿠오카에서 한국인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조선인 유골함을 모셔둔 창고 모습.(사진제공=고병수 기자)

 위반부 등 소녀들을 강제 동원한 일본제국주의는 10대 제주 청소년도 강제동원해 인적수탈의 만행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1932년생 14세의 한 제주의 어린소년이 1945년 4월경 요시하라(吉原)製油(株) 니시노미야(西宮)工場에 투입되는 등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결과”에서 제주인 355명 중 18세 미만의 어린 청소년 10명이 강제 동원되는 만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제주도가 주관한 ‘일제감점기 제주인 강제동원 실태조사’결과 국가기록원 ‘명부자료(名簿資料)’ 데이터화를 통해 본 일제강점기 제주인 강제동원 현황에서 이같이 드러났다.

이 보고서는 태평양전쟁시기 전시체제기인 1937년∼1945년사이 다수의 제주인들이 일제에 강제 동원되어 일본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인적자원으로써 활용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강제동원된 규모는 약 782만 명(연인원, 한반도 내 650만 명, 한반도 외 104만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하고 강제 동원된 조선인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은 자료상의 한계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일본 정부로부터 인계받아 국가기록원에서 소장 중인 ‘명부자료’들은 현재 국가기록원에서 ‘일제 강점기 피해자 명부’로 지칭하고 있고 그 규모는 일본으로부터 인계받은 자료 48만 693명과 한국 정부가 작성한 28만5천771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특히 자료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발굴된 자료들은 ‘일정시피징병자급 애국운동자명부’를 제외하고는 검색도 불가능하다.

또한 바로 자료 내용의 설명에 대해 상당한 오류가 존재해 조선인 강제동원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이해 없이 관련 내용이 작성된 것에서 비롯된 문제로 보인다고 밝혔다.

제주인 ‘명부자료’의 현황은 2018년 ‘일제강점기 제주인 강제동원 실태조사’용역 사업 중 제주학연구센터의 요청에 의해 국가기록원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었다는 것.

제공된 제주인 관련‘명부자료’는 디지털 파일(JPG 파일, 총 12.1GB) 형태로 수록된 4개의 DVD와 이들의 색인목록(EXCEL 파일)으로 구성됐다.

이에 총 1만 432명의 제주인에 대한 기록이 제공되었는데, 각 명부들의 성격상 여기에는 중복된 인원이 다수 존재한다.

데이터화 작업은 자료 자체의 문제점과 부족한 연구로 인해 100%의 정확도를 이룰 수가 없었다. 데이터화 작업에서 직면한 난점으로 가장 큰 문제점은 원자료 자체의 오류이다. 개별 자료들 자체가 기재된 내용에 여러 오류를 지니고 있다.

명부자료 중 “조선인노동자에 관한 조사결과”는 1946년 GHQ(연합국총사령부)의 지시에 의해 일본 후생성이 각 현에 전시체제기 조선인 노무자를 사용한 각 작업장별로 관련 내용을 조사·보고할 것을 지시한 결과로 만들어진 자료다.

이 자료에 수록된 인원수에 대해 국가기록원은 총 6만9천766건으로 파악하고 있으며 제주인 색인목록에는 377건이 수록됐다.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결과” 총 377건이 확인되지만 이는 중복분 총 17건과 오류분(국기 엑셀 오류 3건-비제주도를 제주도로 인식- 및 원자료 기재 오류)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이를 제외하면 총 355명의 제주인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355명이 투입된 작업장은 9개 현(県)에 걸쳐 약 40개 작업장이 확인됐다.

가장 많은 269명이 효고(兵庫)현의 15개 작업장에 투입됐다.

특히 하리마조선소(播磨造船所)에는 전체 인원 355명의 과반 이상인 64.79%을 차지하는 230명이 투입돼 가장 많은 제주인들이 투입된 작업장이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니폰(日本)壓延共業에 11명이 뒤를 잇는다. 효고(兵庫)현 이외로 다수가 투입되는 지역은 도치키(栃木)현, 나가사키(長崎)현, 나가노(長野)현으로 각각 36명, 16명, 10명이 투입됐다.

그 외로는 10명 이내의 인원이 투입됐다.

본적지는 제주가 가장 많은 65명이 동원됐다. 이어 한림 61명, 애월 42명 등 이었고 남원, 대정, 중문 등의 지역에서도 20명 이상이 동원됐다.

이들의 투입 시기는 투1937년부터 1945년에 걸쳐 분포한 것을 파악할 수 있으며, 이중에 1944년에 과반 이상인 74.3% 249명이 투입되어 태평양전쟁이 일본이 보인 야욕에 제주인과 조선인 등이 강제노역 등에 시달린 것으로 나타났다.

20대가 265명으로 높은 비중(78.6%)을 차지하고 있다. 특히 22세의 경우 194명으로 20대 중 73.2%를 차지하고 있는데 337명 전체 중에서도 과반 이상인 57.6%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심재욱 전 제주대 연구교수는 “강제 동원된 제주인들의 현황 일부를 파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매우 의의를 갖는 작업이었다고 판단된다”며 “또한 현재 이런 작업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은 물론이고 국가 차원에서도 진행되지 않은 작업으로 추후 보다 세부적인 연구의 기초 데이터로써 활용될 수 있어 가치를 지닐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고광명 박사는 “강제동원이 ‘종료’된지 70여 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이에 대한 관심은 부족하고 학문적 연구도 미비한 상태로 많은 연구 과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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