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지역 시민단체 목비(木碑)로 세워진 경우도...日 정부 과거 역사 인정않아 일부 시민단체(NGO), 민단-조총련 등 연계 건립
야스쿠니신사 조선인 강제 징집자들 유골없이 명부 임의 이름 올려 신사 합사...제주인도 있어
고광명 박사 훗카이도서 미츠이 비바이(美唄)탄광서 사망한 조선인 위로 추모비 새롭게 발견

나가노(長野)현 마츠시로(松代) 대본영(大本營) 조선인 희생자 추모 평화 기념비.

일본내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강제연행에 의한 사망자를 애도하는 위령비, 추모비, 추도비 등은 일본 전역에 138기가 있어 억울한 죽음에 대한 원혼을 달래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강제연행과 관련된 비는 85기, 관동대지진 19기, 위안부 5기 등으로 구분된다.

일본 향토사학자인 다케우치 야스토(竹内康人)가 펴낸 저서에 따르면 조선인 강제연행 관련 묘비는 후쿠오카(福岡) 16기, 훗카이도(北海道)·도쿄(東京)·오사카(大阪) 각각 10기, 오키나와(沖縄) 8기, 지바(千葉) 7기, 사이타마(埼玉)·시즈오카(静岡)·효고(兵庫)·나가사키(長崎) 각각 6기 등으로 일본 31개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이 외에도 고광명(제주다문화교육복지연구원 재외제주인센터 소장) 박사팀은 훗카이도에서 미츠이(三井) 비바이(美唄)탄광에서 사망한 조선인을 위로하는 추모비를 새롭게 발견하는 성과도 이뤘다.

이 추모비는 일본인 주지 스님(杉田英隆)과 미츠비시(三菱), 그리고 구미(組) 지원으로 죠코지(常光寺)에 건립해 억울하게 죽은 조선인들의 원혼을 달래주고 있었다.

유형별로는 위령탑(남골당) 이바라키(茨城)현 朝鮮人慰靈塔·納骨塔은 원래 히타치(日立)시 모토야마(本山)절에 히타치 광산에서 목숨 을 잃은 조선인과 중국인을 위한 작은 비가 있었는데 히타치(日立)광산의 강제연행이 여론으로 들끓자 이 문제를 무시할 수 없게 된 히타치 광산 측이 세운 것이다.

위령비 비율이 8개(27.7%)로 가장 높았으며, 추도비가 7개(24.1%), 위령비와 기타(기념비, 여명의 상, 나무아비타불, 관음상, 신사 등)가 5개(17.2%), 추모비와 공양탑이 각각 2개(6.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토치기현(栃木) 시민단체가 세운 목판 추모비.

이들 비석들은 대부분 석비(石碑)로 건립되어 있으나 일부 지역은 시민단체(日本朝鮮友好栃木県民의 모임)에 의해 목비(木碑)로 세워진 경우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비(碑) 건립 시기별로 1990년대 비율이 7개(24.1%)로 가장 높았으며, 1970년대가 6개(20.7%), 2000년 이후가 5개(17.2%), 1980년대가 4개(13.8%), 1945년 이전이 3개(10.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에 대해 고광명 박사는 “지난 1993년 8월 4일 일본국 정부가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 명의로 밝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식적으로 사죄한 ‘고노 담화(河野談話)’로 인해 한·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형성된 것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비(碑) 건립 장소별로는 종교시설(절)과 공원 비율이 각각 8개(27.7%)로 가장 높았으며 기타 해변, 빌딩 앞, 지하호 입구, 산업문화센터, 해안가, 산기슭, 신사 등 5개(17.2%), 박물관이 1개(3.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비석들은 추도하기 편하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건립하고 있으나 일본 정부가 과거 역사를 인정하고 있지 않는 관계로 인해 일부는 시민단체(NGO)나 민단, 조총련 등이 다른 조직과 연계해서 건립 가능한 장소에 세웠다는 것.

특히 야스쿠니(靖国)신사에 따르면 조선인의 강제 일본군 징집자들을 유골도 없이 명부에 임의로 이름을 올려 신사에 합사한 것에 대해 해당 국가의 후손들은 망자의 이름을 삭제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가 단지 종교시설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명부에 손을 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1995년 후쿠시마(福島)현 동산(東山)영원에 건립한 비는 강제연행으로 기인하는 의로이 죽음(殉難)을 냉엄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 조국의 해방과 광복 50주년을 맞이해 현재 확인되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146명을 비롯한 모든 분들에게 영원한 명복을 마음속으로 빌고 불행한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양 민족의 평화, 우호, 친선, 발전을 위하여 다시 전쟁을 허락하지 않는 것을 맹세하는 의미에서 세워졌다.
 
건립 주체별로는 시민단체 비율이 9개(31.0%)로 가장 높았으며, 종교인이 5개(17.2%), 일본 정부가 4개(13.8%), 민단과 조총련이 각각 2개(6.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비석은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위한 양심 있는 일본인, 시민단체, 뜻있는 대한민국 민단과 조총련 등 재일한국·조선인, 일본과 한국의 종교계, 일부이지만 주일대사관, 영사관 등의 도움을 받아 세워져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달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국립 망향의 동산 무연고 합장 묘역에는 합장 제1호 가나가와(神奈川)현 무명 한국인 묘지 36위, 합장 제2호 태평양 사이판 티니안(tinian)섬 전몰 무명 한국인 묘지 5천위, 합장 제3호 홋카이도(北海道) 254위, 합장 제4호 일본국 가나가와(神奈川)현 49위, 합장 제5호 미에(三重)현 76위, 합장 제6호 기타규슈(北九州)시 37위, 합장 제7호 후쿠오카(福岡)현 341위, 합장 제8호 야마구치(山口)현 미네시(美祢)시 12위, 합장 제9호 미야기(宮城)현 52위, 합장 제10호 야마구치(山口)현 343위, 합장 제11호 나가사키(長崎)현 230위, 합장 제12호 가나가와(神奈川)현 55위, 합장 제13호 홋카이도(北海道) 473위, 합장 제14호 히로시마(広島)현 무연고 한국인 합동 묘지 23위, 합장 제15호 오카야마(岡山)현 19위, 제16호 사가(佐賀)현 23위, 합장 제17호 사할린 희생동포 1천842위, 합장 제18호 재일본조선인 무연고 유골 합동 묘지 76위, 합장 제19호 태평양전쟁 한국인 희생자 묘지 104위 등 총 9천045위가 국립 망향의 동산 장미 묘역에 합장됐다.

이들 중 제주도 출신은 51위로 확인됐고 일부는 창씨개명 후 자신의 한국 이름을 찾지도 못한 채 일본 성씨로 안장되어 있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처럼 조선인은 물론이고 이중 제주인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일본 전역 및 국립 망향의 동산에도 위패가 모셔져 죽어서도 고향 제주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어 아타깝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억울하게 먼 타향과 타국에서 돌아가신 제주인을 위한 위령비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귀포 낙천사에 태평양 전쟁 전몰 위령비는 있으나 일부로 지적되고 있고 일제강점기 탄광 등에서 죽은 노동자, 일본군 부역자, 일본군으로 강제로 끌려가 전쟁 중 사망한 제주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피해, 관동 대지진 등에서 처참하게 돌아가신 제주인을 위한 모두의 위령비가 세워져 이들의 원혼을 고향 제주에서 기려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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