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일출봉은 섬속의섬 이었다”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밀물과 썰물에 의해 성산일출봉 마을 입구가 열리고 닫히던 자연적인 수문이었던  ‘터진목’이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말에서 40년대 초에 돌과 콘크리트로 성산읍 고성리로 연결되는 도로를 개설하며 이곳이 파괴되고 막혀버렸다.

이에 강원도 고성 동해안의 석호인 화진포와 송지호는 좁은 수로를 통해 바다와 연결되고 있으며, 수로가 막히면 인공적으로 뚫어 놓는 사례를 본받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대로의 자연을 위해 ‘터진목’의 복원과 관리가 필요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행정당국의 자연친화적 정책을 기대하고 있다.

성산일출봉, 성산리 입구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던 50여m 너비의 ‘터진목’이라고 부르는 좁은 목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 육지와 이어져 있다. 그대로의 자연을 파괴하고 도민 등 편의만을 위해 이곳을 메워버렸다.

이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육지와 간신히 이어져 있는 목이었다 해 ‘터진목’이라고 불린다.

성산일출봉이 생성될 당시에는 성산일출봉은 제주도의 부속 도서(섬)인 작은 화산섬이었으나, 육지와 섬 사이를 연결한 사주(砂洲)인 육계사주(陸繫沙洲)의 발달로 섭지코지 광치기해변 쪽으로 본도와 연결되게 됐다.

과거에는 터진목을 통해 바닷물이 호수로 드나들었으나 일제 강점기 때에 도로를 개설하면서 터진목을 완전히 메운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따라 터진목을 자연상태로 복원해 바닷물이 드나들고, 어류가 이동하는 모습을 관찰하도록 유지 관리해 성산일출봉이 작은 화산섬으로 모습을 유지토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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