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있어 뱃도를 마련하는 일은 땅을 일구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었다. 땅은 농사를 짓기에 척박하고 바다는 거칠지만 제주에 터를 잡고 살아가야 하는 제주인들은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오늘 기행의 맨 동쪽인 구좌읍 하도리의‘한개창’에서부터 화북의‘엉물머리, 금돈지’뱃도까지를 돌아보았다.

제주인들은 이 농사짓기에 척박한 땅과 거친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이용하기에 주저하지 않고 지혜를 짜내었다.

바다가 육지로 들어온 곳은 들어온 대로 육지가 바다로 튀어나간 곳은 튀어 나간 대로 바다 지형을 잘 이용해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해 이용한 모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뱃도는 만입형, 곶형, 빌레형, 천변형, 복합형, 애형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뱃도는 마을 이름과 지형을 따서 이름을 붙이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삶의 터전으로 이용하는 이상 거친 바다가 늘 생명을 위협하는 위험에 접하게 되어 그 불안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자연신에게 빌 수밖에 없어서 주요한 뱃도에는 당이 있었다.

또한 해안 지형을 이용하는 시설로는 갯담이 뱃도가 있는 곳에는 거의 있었다. 밀물에 멸치를 따라 들어왔다가 썰물에 나가지 못해 갯담에 가두어져서 주민의 손에 잡히는 상상을 하니 속으로 웃음이 번졌다.

뱃도는 생활의 터전으로 뿐만 아니라 연육 교통의 관문으로서의 역할도 중요한 몫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관의 통제는 여전하여 뭍 나들이는 화북과 조천의 뱃도만을 이용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또 하나 중요한 역할은 방어시설 즉 해군기지로서의 역할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제주의 방어 체계로는 3성, 9진, 10수전소, 25봉수대, 38연대가 있어 제주의 안전을 지키는 일을 감당했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 중의 하나인 노르웨이에서 순식간에 98명의 인명을 앗아간 끔찍한 테러가 일어났다. 평화는 평화롭다고 해서, 누가 보장해 준다고 해서 영원히 평화가 유지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제주는 역사적으로 크게 알려진 원나라의 목마장 건설로 인한 주민에 대한 억압과 착취가 있었고 지정학상 수시로 해안을 침공해 노략질하는 피해를 당해 왔었다.

평화를 보장받는 길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체계와 시설과 의지를 굳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는 것이다. 제주의 해군기지는 역사에서 보여준 수전소와 환해장성의 현대적 변형이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 (임창효 단우/평의회의장)

우리 가는 길에 화려한 꽃은 없었다./자운영 달개비 쑥부쟁이/이런 것들이 허리를 기대고 피어있을 뿐이었다./그래서 빛나는 광택도/내세울 만한 열매도 많지 않았지만/허황한 꿈에 젖지 않고/팍팍한 돌길을 천천히 걸어/네게 이르렀다. (중략) 가식 없는 소리로 말을 걸며 네게 이르렀다.(시인 도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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