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노동자에관한조사결과” 377명 제주인 중 하리마조선소(播磨造船所)에 66% 249명 투입된 군함을 만들 던 하리마 조선소가 있는 일본 효고현 아이오시(相生시)를 직접 찾아 제주인들의 처참한 노동력 착취 등을 현장을 찾았다.

노동력을 착취한 제주인 249명 중 본적지를 보면 제주 65명, 한림 61명, 애월 42명, 남원, 대정, 중문 등도 20명 이상 동원되어 힘든 노동에 시달렸다,

힘든 노동과 한 가정이 파괴된 완전한 몰락의 사례를 보면 일제강점기 때 강제연행되어 해군 군속으로 태평양전쟁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신촌리 출신 A씨는 일본 효고현 하리마조선소에서 군속으로 전쟁에 참여해 미군의 공습에 사망했다. 

지역 연구자인 일본인 M씨(73. 남)는 “어른들이 (아이오시) 수로 건너 조선인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해 한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M씨는 “한국인들은 거주지역에서 밀주를 만들어 팔아 경찰이 오고 가기도 했으나 나중에 전쟁 중이라 일본인들도 밀주를 마시러 왔었다”고 전했다.

이 지역은 하리마 조선소에서 차로 10분거리로 1945년 당시에는 4만명이 거주했으나 조선업의 위축 등으로 현재 3만의 소도시로 지역의 재건을 위해 일본 지자체가 노력하고 있었다.

특히 아이오시내에 일제강점기 한국인들 중 고맙다는 표시로 플라타너스 나무를 지역에 기증해 이에 대한 유례를 담은 표지석을 세워 지역에 알리고 있었다.

표지석의 내용을 보면 “태평양 전쟁 등 강제연행 등으로 조선소로 강제연행(끌려온)된 한국인들이 전후 조국으로 돌아갈 때(1959년) 신세를 진 일본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플라타나스 나무를 심었다”고 적혀 있었다.

노동력 착취를 위한 집단거주지는 여기저기 있었으나 아이오시 이 지역이 규모가 가장 컸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다른 지역 연구가 Y씨(73. 남)에 따르면 강제동원된 한국인은 2천200명 정도가 집단 거주됐고 강제동원 이전에 조선소에 근무하는 100명과 일본노동자는 분리해 거주지가 정해졌다고 밝혔다.

한편 효고현 아이오시 시립 공동묘지내에 조선인 무연고묘가 있었다. 태평양전쟁 중 여러 사유로 사망한 한국인들을 위해 한 불교사찰에서 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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