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동안 세차게 춥다가 살짝 날씨가 풀린 겨울 제주문화유산답사회(이하 답사회)의 214차 정기 기행이 있었다. 이번 주제는 일제 전적지인 갱도진지 집중탐구였다.

답사회는 송악산이나 수월봉 등의 갱도진지들을 여러 차례 답사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오로지 갱도진지만을 확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답사는 답사회에서 가보지 못했지만 그 규모나 전략적 가치에서 중요한 것들을 중심으로 답사가 이루어졌다.

답사지는 논오름, 단산, 월라봉, 군산의 갱도진지와 황우지 해안의 특공기지였다. 이곳은 결7호작전 당시 제58군 제111사단 245연대의 주둔지이다. 제111사단은 제주에 주둔한 일본군 중 가장 실전 경험이 풍부했던 부대로 만주에서 활약한 관동군 출신의 부대이다.

이들은 가마오름, 도너리오름, 이계오름에 지휘부를 세우고 제주도 남서 지역을 관할했다. 특히 송악산, 단산, 산방산, 월라봉, 군산으로 이어지는 전선(戰線)에 주저항진지를 구축하고 미군의 상륙을 기다리고 있었다.

답사는 논오름에서 출발했다. 논오름은 245연대의 주둔지로 추정되는데 오름 안쪽으로 움푹 들어간 지형이 막사를 설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답사회는 이곳에서 9개의 동굴 입구를 발견했는데 대부분은 두 입구가 연결된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특히 통로 양쪽으로 엇갈리듯 뚫려있는 구조는 군대의 생활관(내무반)을 연상시켰다. 의도적으로 조그마한 구멍을 내어 반대쪽 통로로 이어놓은 듯한 구조도 볼 수 있어서 매우 흥미로웠다. 논오름에 오르면 245연대의 주저항진지 전선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두 번째 답사지는 단산이었다. 답사회원들은 북서쪽 사면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걸으면서 갱도진지를 확인했다. 꽤나 높은 곳에 만들어진 갱도진지를 보며 회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월라봉은 최근인 11월에 정비가 이루어져 안내판이 새로 설치되어 있었다. 이 곳에는 토치카가 인상적인데 H자 구조로 이루어진 갱도진지의 중간 지점에 화순항을 바라보도록 설치되었다. 토치카를 이루는 콘크리트가 아직도 깨끗하게 잘 남아있다.

당시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갱목과 곡괭이도 확인할 수 있었다. 네 번째 장소인 군산에서는 답사회 회원인 송장환님의 안내로 정상 부근에 숨어있던 거대 갱도진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총 길이가 150여 미터는 족히 될 듯한 규모로 총 네 군데로 입구가 나 있는데 한 곳을 빼고는 입구가 무너져 닫혀버렸다.

예전에는 이 중 한 곳이 열려서 사자암 쪽으로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답사회원인 김선일(닉네임 새덕이)님은 가마오름처럼 정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소감을 피력하기도. 마지막 장소는 황우지 해안의 신요(진양;震洋) 특공기지였다. ‘신요’는 전쟁말기 사용된 여러 자살 특공무기들 중 하나로 나무보트 앞에 250kg의 TNT를 적재하고 적함에 부딪쳐 피해를 주는 무기다. 카이텐(회천;回天)과 함께 잘 알려진 자살 특공 무기이다. 황우지 해안의 특공기지는 주민들이 ‘열두 동굴’이라 부르는 곳으로 회원들은 동굴 숫자가 12개인가 13개인가를 두고 의견을 나누었다.

답사회원인 고정대님은 “전에 혼자 여기를 와서 확인하려고 했지만 밀물로 길이 막혀 가지 못했다. 이번에 어렵게 와서 감회가 깊다.”고 하였다. 사진을 찍으려고 했으나 카메라를 차에 놓고 내리셔서 아쉬워했다.

황우지 해안에서 올라오니 어느 새 날이 저물어 밤이 됐다./고정우 단우

 

저작권자 © 제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