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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규슈-오키나와 지역 재일제주인 강제동원 206명...실제 이보다 훨씬 많아규슈와 오키나와 위령비 등 비석 36기
사망 원인별 탄광사고-전쟁(위안부) 각10개 27.8%, 가혹한 노동 9개 25.0%, 조난(익사) 3개 8.2%, 도주‧고문-원폭 각 2개 5.6% 차지
일본 강제 끌려가 가혹한 노동 속 목숨 잃거나 억울한 죽음 원통한 삶 살아
고병수 기자 | 승인 2020.05.19 02:51
오키나와 '평화의 공원' 각명비 모습.

일본 규슈와 오키나와 지역의 재일제주인 강제동원 실태를 보면 지역별로 후쿠오카(福岡)현이 73명(35.4%)으로 가장 많았다. 나가사키(長崎)현이 63명(30.6%), 불분명한 강제동원지가 44명(21.4%), 가고시마((鹿児島)현이 17명(8.2%), 오키나와(沖縄)현이 6명(2.9%), 사가(佐賀)현과 오이타(大分)현, 미야자키(宮崎)현이 1명(0.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실제 이보다 훨씬 많은 수의 제주인이 이름도 모른채 일본전역에서 죽어갔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 ‘피징용자 명부’에 등록된 제주인 8천715명 가운데 강제동원지를 ‘구주(九州)’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제주인 피해자는 총 206명으로 나타났다.

국가기록원의 자료에 따르면 제주인은 광업 66명, 비행장건설 8명, 군수공장 5명, 군인군속 16명, 운수항만 1명, 불명 110명으로 분류됐다.

근현대사 향토사학자인 다케우치 야스토(竹内康人)編에 따르면 제주인은 광업 13명, 군인군속 24명, 원폭 2명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키나와 평화공원 ‘평화의 초석’ 각명비에 한국인 380명 중 제주인 5명 명단이 확인됐다.

한편 재일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해 사망자를 애도하는 묘비(위령비, 추모비, 추도비 등)는 일본 전역에 138기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강제연행과 관련된 비는 85기, 관동대지진 19기, 위안부 5기 등으로 구분된다.

조선인 강제연행 관련 묘비는 후쿠오카(福岡) 16기, 훗카이도(北海道)‧도쿄(東京)‧오사카(大阪) 각각 10기, 오키나와(沖縄) 8기, 지바(千葉) 7기, 사이타마(埼玉)‧시즈오카(静岡)‧효고(兵庫)‧나가사키(長崎) 각각 6기 등으로 일본 31개 지역에 건립되어 분포하고 있다.
 
일본 규슈와 오키나와 지역에는 총 36개의 위령비 등 비석이 있다.  위령비가 17개 47.2%로 가장 많았다. 이어 공양(위령)탑이 5개 14.0%, 납골당과 기타(기념비, 평화상, 묘지, 각명비 등)가 각각 4개 11.1%, 추모(추도)비와 진혼(조혼)비가 각각 3개 8.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립 시기별로 1990년대가 9개(25.0%), 1970년대가 8개(22.2%), 1980년대가 7개(19.5%), 1960년대와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는 불명이 각각 4개(11.1%), 2000년대가 3개(8.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에 대해 1990년대 이후 한·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형성된 것과 관련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위령비 등 건립 주체는 시민단체가 9개 25.0%로 가장 많았다. 이어 회사 관계 8개 22.2%, 종교인이 5개 13.9%, 민단‧조총련과 지자체, 미상(마을 주민, 시민, 봉찬회, 개인)이 각각 4개 11.1%, 조합(노동)이 2개 5.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비석은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위한 양심 있는 일본인, 뜻있는 시민단체, 회사 관계자, 대한민국 민단과 조총련 등 재일한국‧조선인, 일본과 한국의 종교계, 지방자치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세워져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달래고 있었다.

근무지별로 탄광(광산)이 22개 61.1%로 가장 높았다. 이어 군부대(특공기지)가 7개 19.4%, 건설(토목) 공사가 3개 8.3%, 위안소도 2개 5.6%, 철도 공사와 비행장 건설이 각각 1개 2.8%를 차지했다.

이는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은 대부분 탄광(광산)이나 철도, 댐 공사 등에서 강제노역을 했거나 군인군속으로 차출된 경우는 위안소(성적노예)와 군수공장, 그리고 군사기지(비행장 등) 건설에 동원됐다.

사망 원인별로는 탄광 사고나 전쟁(위안부)이 각각 10개 27.8%로 가장 많았다. 이어 가혹한 노동이 9개 25.0%, 조난(익사)가 3개 8.2%, 도주‧고문과 원폭이 각각 2개 5.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이들 대부분은 일본에 강제적으로 끌려가서 가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목숨을 잃거나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 원통한 삶을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지역별로는 후쿠오카(福岡)가 17개 47.2%로 가장 많았다. 이어 오키나와(沖縄)가 7개 19.4%, 나가사키(長崎)가 5개 13.8%, 구마모토(熊本)와 가고시마(鹿児島)가 각각 2개 5.6%, 사가(佐賀)와 오이타(大分), 미야자키(宮崎)가 각각 1개 2.8%를 차지했다. 이들은 규슈/오키나와 지방에서 탄광, 비행장 건설, 군수공장, 군인군속, 성적노예 등으로 강제 동원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일제주인 이동경로를 보면 제주도 출신들은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징병·징용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는 것.

그 당시(1939∼1945년) 조선을 오고간 정기 여객선은 제주-오사카의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와 부산-시모노세키(下関)의 관부(関釜)연락선 등 두개의 이동경로가 있었다는 것.
 
첫번째로 제주도에서 출발하여 오사카에 도착하는 기미가요마루이다. 이 배는 1923년부터 1945년 초까지 제주도와 오사카 항로를 운항했다. 매달 3차례 제주의 각 기항지를 한 바퀴 돌고 일본으로 향해 제주도 출신자들이 이주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제주도에서 이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에서 기미가요마루를 이용해 오사카에 도착한 후 규슈/오키나와 지방 등지로 이동했다.

2번째 유형은 제주도에서 출발해서 부산을 경유해 시모노세키에 도착하는 관부연락선이다. 이 배는 1905년 운항을 시작으로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항로에 취항했다.

제주에서 출발해 일본에 도착한 후 규슈/오키나와 지방의 각 지역(8개현)으로 강제 동원되어 어려운 삶을 살았다. 이와 함께 일본에 먼저 건너간 제주도 출신들의 경우는 일본 현지 오사카에서 오키나와로 군인군속이나 군수공장 등에 동원된 경로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고병수 기자  bsko74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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