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규슈/오키나와 재일제주인 강제동원 실태
규슈/오키나와 지방을 지역별로 분류하면, 아래〔표 Ⅲ-1〕과 같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 ‘피징용자 명부’에 등록된 제주인 8,715명 가운데 강제동원지를 ‘구주(九州)’라는 키워드로 검색하면, 제주인 피해자는 206명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 검색하면 후쿠오카(福岡)현이 73명(35.4%)으로 가장 많았으며, 나가사키(長崎)현이 63명(30.6%), 불분명한 강제동원지가 44명(21.4%), 가고시마((鹿児島)현이 17명(8.2%), 오키나와(沖縄)현이 6명(2.9%), 사가(佐賀)현과 오이타(大分)현, 미야자키(宮崎)현이 1명(0.5%)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1. 후쿠오카(福岡)현
〔표 Ⅲ-2〕는 후쿠오카(福岡)현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竹内康人編(2015) 竹内康人編(2015), 󰡔戦時朝鮮人強制労働調査資料集(増補改訂版)-連行先一覧‧全国地図‧死亡者名簿󰡕, 神戸学生青年センタ-.

 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수는 186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광업(89명), 군수공장(38명), 운수항만(16명), 토목건설(13명), 성적노예(9명), 비행장 건설과 군인군속(각 8명), 지하공장 건설(3명), 군 공사(2명) 등에 강제 동원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중에서 제주도 출신(11명)은 광업(8명)이나 군인군속(3명)으로 동원되어 탄광이나 군부대에서 종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주도 출신자(73명)는 광업(28명), 비행장 건설(8명), 군수공장과 군인군속(각 4명) 등으로 동원되었거나 불분명한 장소에서 피해를 당한 경우도 29명으로 파악되었다.

2.사가(佐賀)현
〔표 Ⅲ-3〕은 사가(佐賀)현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竹内康人編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수는 4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광업(19명), 운수항만(8명), 군 공사(7명), 토목건설(3명), 비행장 건설과 군수공장, 군인군속, 성적노예,  농림(각 1명) 등에서 강제 동원되어 작업을 수행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주도 출신자(1명)는 광업에 종사한 것으로 보인다.

 3. 나가사키(長崎)현
〔표 Ⅲ-4〕는 나가사키(長崎)현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竹内康人編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수는 133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광업(38명), 군 공사(21명), 군인군속(19명), 토목건설(18명), 지하공장 건설과 군수공장(각 11명), 비행장 건설과 운수항만(각 6명), 성적노예(3명) 등에 강제 동원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중에서 제주도 출신(12명)은 광업과 군인군속(각 5명), 원폭(2명) 등 탄광이나 군부대, 건설공사 등에서 종사한 것으로 여겨진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주도 출신자(63명)는 광업(16명), 군수공장과 운수항만(각 1명), 불분명한 장소(45명) 등에 동원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4. 오이타(大分)현
〔표 Ⅲ-5〕는 오이타(大分)현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竹内康人編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수는 53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광업(9명), 토목건설과 군 공사(각 8명), 비행장 건설(7명), 지하공장 건설(6명), 군수공장과 운수항만(각 3명), 성적노예와 농림(각 1명) 등에 동원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주도 출신자(1명)는 군부대(군인군속)에서 종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5. 구마모토(熊本)현
〔표 Ⅲ-6〕은 구마모토(熊本)현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竹内康人編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수는 39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군 공사(13명), 비행장 건설(7명), 발전공사(5명), 광업과 토목건설, 군인군속(각 4명), 군수공장과 농림(각 1명) 등에 강제 동원되어 피해를 당한 것으로 판단된다.

6. 미야자키(宮崎)현
〔표 Ⅲ-7〕은 미야자키(宮崎)현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竹内康人編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수는 48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하공장 건설(11명), 토목건설(8명), 광업(7명), 비행장 건설과 군 공사(각 6명), 군인군속(5명), 군수공장과 성적노예(각 2명), 농림(1명) 등에 동원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주도 출신자(1명)는 군부대(군인군속)에서 종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7. 가고시마(鹿児島)현
〔표 Ⅲ-8〕은 가고시마(鹿児島)현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竹内康人編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수는 70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군 공사(26명), 비행장 건설(18명), 군인군속(14명), 광업(9명), 운수항만과 성적노예, 봉사대(각 1명) 등에 강제 동원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중에서 제주도 출신(4명)은 군부대(군인군속)에서 종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주도 출신자(17명)는 군인군속(8명), 불분명한 장소(9명) 등에 동원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8. 오키나와(沖縄)현
〔표 Ⅲ-9〕는 오키나와(沖縄)현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竹内康人編의 자료에 따르면 강제동원 재일조선인 수는 118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성적노예(52명), 군 공사(25명), 군인군속(19명), 운수항만(10명), 비행장 건설(9명), 광업(3명) 등에 강제 동원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중에서 제주도 출신(12명)은 군부대(군인군속)에서  종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주도 출신자(6명)는 군인군속(1명), 불분명한 장소(5명) 등에 동원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9. 불분명한 규슈(九州)지방
〔표 Ⅲ-10〕은 불분명한 규슈(九州)지방 재일제주인 강제동원 현황을 나타낸 것이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주도 출신자(44명)는 광업(21명)이나 군인군속(1명)으로 종사하였거나 불분명한 장소에 동원된 경우도 22명으로 파악되었다.

Ⅳ. 조사 결과

1. 조사 개요

현지조사는 일본에서 제주도 출신들을 포함한 많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거주했던 일부 지역(8개 県)을 중심으로 실시했다. 본 조사는 일본 8개 지방 중 규슈(九州)/오키나와(沖縄)지방에 국한하여 실시하였다. 조사대상 지역은 후쿠오카(福岡), 사가(佐賀), 나가사키(長崎), 오이타(大分), 구마모토(熊本), 미야자키(宮崎), 가고시마(鹿児島), 오키나와(沖縄) 등 8개 현(県)이다.

본 조사는 일제 강제연행 관련 비(碑) 조사, 재일제주인 이동경로, 기관방문(역사 사료관, 자료관, 박물관 등), 면담조사(연구자, 시민단체, 종교인)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비(碑) 조사는 비(碑) 개요(명칭, 건립 시기, 건립 장소, 소재지, 건립 주체, 건립 목적), 이동경로, 강제동원 현장, 사망원인, 비문, 사진 등을 중심으로 작성하였으며, 마지막에 조사한 일시 및 장소, 조사자의 성명을 기록하였다. 재일제주인 이동경로는 제주오사카, 부산시모노세키 등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기관방문은 기관명, 소재지, 방문 목적과 내용 등으로 이루어졌다. 면담조사는 성명, 소속, 직업, 거주지, 면담 목적과 내용 등으로 이루어졌다. 다만 강제동원 관련 비 특성에서는 2017년(4개)과 2018년(32개)에 조사한 내용을 중심으로 분석을 진행하였다(〔표 Ⅳ-1〕참조).

2. 재일조선인 강제동원 관련 비(碑) 특성

일본에서 강제연행 사망자를 애도하는 묘비(위령비, 추모비, 추도비 등)는 일본 전역에 138기가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가운데 강제연행과 관련된 비는 85기, 관동대지진 19기, 위안부 5기 등으로 구분된다. 조선인 강제연행 관련 묘비는 후쿠오카(福岡) 16기, 훗카이도(北海道)‧도쿄(東京)‧오사카(大阪) 각각 10기, 오키나와(沖縄) 8기, 지바(千葉) 7기, 사이타마(埼玉)‧시즈오카(静岡)‧효고(兵庫)‧나가사키(長崎) 각각 6기 등으로 일본 31개 지역에 건립되어 분포하고 있다. 竹内康人編(2015), 앞의 책, pp.208∼210.

1) 유형별 특성

〔표 Ⅳ-2〕는 비(碑) 유형별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유형별로는 위령비가 17개(47.2%)로 가장 높았으며, 공양(위령)탑이 5개(14.0%), 납골당과 기타(기념비, 평화상, 묘지, 각명비 등)가 각각 4개(11.1%), 추모(추도)비와 진혼(조혼)비가 각각 3개(8.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비석들은 대부분 석비(石碑)로 건립되어 있으나 일부는 목비(木碑)나 철비(평화상)로 세워진 경우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2) 건립 시기별 특성

〔표 Ⅳ-3〕은 비(碑) 건립 시기별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건립 시기별로는 1990년대가 9개(25.0%)로 가장 높았으며, 1970년대가 8개(22.2%), 1980년대가 7개(19.5%), 1960년대와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는 불명이 각각 4개(11.1%), 2000년대가 3개(8.3%)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현상은 1990년대 이후 한·일 관계가 우호적으로 형성된 것과 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된다.

3) 건립 장소별 특성

〔표 Ⅳ-4〕는 비(碑) 건립 장소별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건립 장소별로는 공원이 12개(33.3%)로 가장 높았으며, 묘지(영원)가 11개(30.5%), 종교시설이 5개(13.9%), 기타(해안가, 공항 활주로 근처, 공업단지 산기슭, 회관, 개인주택 농지 등)가 4개, 해안가와 위안소 터가 각각 2개(5.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비석들은 추도하기 편하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건립하고 있으나 일부의 경우는 시민단체(NGO)나 종교인, 민단·조총련 등이 건립 주체들과 연계해서 건립 가능한 장소에 세웠다고 볼 수 있다.

4) 건립 주체별 특성

〔표 Ⅳ-5〕는 비(碑) 건립 주체별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건립 주체별로는 시민단체가 9개(25.0%)로 가장 높았으며, 회사 관계 8개(22.2%), 종교인이 5개(13.9%), 민단‧조총련과 지자체, 미상(마을 주민, 시민, 봉찬회, 개인)이 각각 4개(11.1%), 조합(노동)이 2개(5.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비석은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위한 양심 있는 일본인, 뜻있는 시민단체, 회사 관계자, 대한민국 민단과 조총련 등 재일한국‧조선인, 일본과 한국의 종교계, 지방자치단체 등의 도움을 받아 세워져 구천을 떠도는 원혼을 달래고 있다.

5) 근무지별 특성

〔표 Ⅳ-6〕은 근무지별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근무지별로는 탄광(광산)이 22개(61.1%)로 가장 높았으며, 군부대(특공기지)가 7개(19.4%), 건설(토목) 공사가 3개(8.3%), 위안소가 2개(5.6%), 철도 공사와 비행장 건설이 각각 1개(2.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으로 강제 징용된 사람들은 대부분 탄광(광산)이나 철도, 댐 공사 등에서 강제노역을 하였거나 군인군속으로 차출된 경우는 위안소(성적노예)와 군수공장, 그리고 군사기지(비행장 등) 건설에 동원되었다. 결국 이들 대부분은 일본에 강제적으로 끌려가서 가혹한 노동조건 속에서 목숨을 잃거나 억울하게 죽음을 당해 원통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6) 사망 원인별 특성

〔표 Ⅳ-7〕은 사망 원인별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사망 원인별로는 탄광 사고나 전쟁(위안부)이 각각 10개(27.8%)로 가장 높았으며, 가혹한 노동이 9개(25.0%), 조난(익사)이 3개(8.2%), 도주‧고문과 원폭이 각각 2개(5.6%)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7) 지역별 특성

〔표 Ⅳ-8〕은 지역별 분포를 나타낸 것이다. 지역별로는 후쿠오카(福岡)가 17개(47.2%)로 가장 높았으며, 오키나와(沖縄)가 7개(19.4%), 나가사키(長崎)가 5개(13.8%), 구마모토(熊本)와 가고시마(鹿児島)가 각각 2개(5.6%), 사가(佐賀)와 오이타(大分), 미야자키(宮崎)가 각각 1개(2.8%)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규슈/오키나와 지방에서 탄광, 비행장 건설, 군수공장, 군인군속, 성적노예 등으로 강제 동원된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3. 재일제주인 이동경로

제주도 출신들은 1930년대 후반에 이르러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징병·징용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그 당시(1939∼1945년) 조선을 오고간 정기 여객선은 제주오사카의 기미가요마루(君が代丸)와 부산시모노세키(下関)의 관부(関釜)연락선 등 두개의 이동경로가 있었다.

Ⅰ유형은 제주도에서 출발하여 오사카에 도착하는 기미가요마루이다. 이 배는 1923년부터 1945년 초까지 제주도와 오사카 항로를 운항하였다. 매달 3차례 제주의 각 기항지를 한 바퀴 돌고 일본으로 향하여 제주도 출신자들이 이주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이주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주에서 기미가요마루를 이용하여 오사카에 도착한 후 규슈/오키나와 지방 등지로 이동하였다.

Ⅱ유형은 제주도에서 출발해서 부산을 경유하여 시모노세키에 도착하는 관부연락선이다. 이 배는 1905년 운항을 시작으로 부산과 시모노세키를 잇는 항로에 취항하였다. 이 경우는 부산에서 관부연락선을 이용하여 시모노세키에 도착한 후 규슈/오키나와 지방 등지로 이동하였다.

〔그림 Ⅳ-1〕은 현지조사에서 확인된 8개 지역을 중심으로 재일제주인 이동경로를 도식화한 것이다. 이들은 제주에서 출발하여 일본에 도착한 후 규슈/오키나와 지방의 각 지역(8개현)으로 강제 동원되어 어려운 삶을 살았다. 결국 제주도 출신들은 제주와 부산을 통해 오사카와 시모노세키를 거쳐 일본 규슈/오키나와 지방으로 강제 동원된 일부 이동경로로 밝혀졌다. 이와 함께 일본에 먼저 건너간 제주도 출신들의 경우는 일본 현지 오사카에서 오키나와로 군인군속이나 군수공장 등에 동원된 경로도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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