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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슈-오키나와 제주인 강제연행 명부 290여명 확인...이름도 없이 죽어간 제주인 더 많아일제강점기 재일제주인 강제동원 현황 및 실태조사(九州·沖縄편)
규슈지방 강제로 동원된 작업장 845개소...이 중 군수공장 140개소 달해
조선인 규슈-오키나와지방 피해자 3만4천명
고병수 기자 | 승인 2020.11.02 13:49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학센터는 일제강점기 재일제주인 강제동원 현황 및 실태조사(九州·沖縄편)를 일본 8개 지방 중 규슈(九州)와 오키나와지방에 국한해 실시했다. [(후쿠오카(福岡), 사가(佐賀), 나가사키(長崎), 오이타(大分), 구마모토(熊本), 미야자키(宮崎), 가고시마, 오키나와 등 8개 현)]

현재 큐슈와 오키나와 지역에 290여명의 제주인이 일제강점기 일본군, 군수공장, 광산, 철도 토목공사 등에 강제동원된 것으로 명부를 통해 나타났다. 명부 중 일부는 중복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명부에도, 일본 전역에 이름도 없이 죽어간 제주인, 조선인은 더 많을 것이란 주장이 일본 시민단체와 연구자들에서 나오고 있다.

강제연행되어 억울하게 죽은 이름도, 고향도 모르채 죽은 조선인 무명인 유골함들 모습.

규슈(九州)와 오키나와(沖縄)지방은 제국주의 일본이 아시아, 태평양 주변국을 침략하기 위해 무기와 군수물자를 생산하였던 곳으로 조선인과 중국인 그리고 연합군 포로들이 이곳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렸다는 것.

현재 파악한 규슈지방 강제로 동원된 작업장은 845개소이며, 이 중 군수공장은 140개소에 달한다.

규슈, 오키나와 지역 일제강점기 재일 제주인 강제동원 명부를 보면 후쿠오카현에는 역사연구가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씨의 피해자명부에 11명, 순직산업인명부 1명, 국가기록원에는 73명으로 집계됐다.

사가현에는 국가기록원에 1명이, 나가사키현에는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씨의 피해자명부에 12명, 국가기록원 62명으로 나타났다.

오이타현은 국가기록원에 1명, 미야자키현에는 국가기록원에 1명이 등재됐다.

가고시마현에는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씨의 피해자명부에 4명, 국가기록원 17명으로 나타났다.

오키나와현에는 다케우치 야스토(竹內康人)씨의 피해자명부에 12명, 국가기록원 6명으로 나타났다. 평화기념 공원에 있는 평화의 초석의 각명자 명부에 조선인 380명중 제주도 출신 5명도 확인했다.

규슈지방에 국가기록원에 불분명한 제주인은 44명으로 조사됐다.

일본 규슈(九州)·오키나와(沖縄)지방 피해자 현황을 살펴보면 후쿠오카(福岡)현 1만3천423명, 사가(佐賀)현 1천626명, 나가사키(長崎)현 6천972명, 구마모토(熊本)현 470명, 오이타(大分)현 327명, 미야자키(宮崎)현 222명, 가고시마현 1천명, 오키나와현 2천499명, 규슈(九州) 7천566명 등 3만4천105명이 피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지역 대표적인 강제동원 기업인 미츠비시(三菱)중공업과 미츠비시(三菱)광업, 일본제철, 스미토모(住友), 히타치(日立) 등이 있었다. 대표적 전범기업 미츠비시가 운영한 나가사키(長崎)조선소에서는 강제 징용당한 조선인 4천700명 중 1천600명이 원폭 투하로 사망됐다.

竹內康人編(2015)에 따르면 사망자 명부에는 제주도 출신 군인, 군속이 622명이다. 이중 육군이 243명, 해군이 379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북태평양, 남양군도, 대만, 필리핀, 자바, 괌으로 이동 중인 전함(戰艦) 등에서 사망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제노역자 중 제주도 출신 사망자는 185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홋카이도(北海道) 29명, 지시마(千島) 19명, 도쿄(東京) 8명, 와카야마(和歌山) 10명, 후쿠오카(福岡) 10명, 나가사키(長崎) 12명, 가고시마 4명, 오키나와 12명, 기타지역 등에서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규슈, 오키나와 지방 8개현에 있는 추모비, 추도비, 위령비 등 36개 재일조선인 관련 비(碑) 현황을 파악했다.

오키나와(沖縄)현 평화기념 공원에 있는 평화의 초석의 각명자명부에서 조선인 380명중 제주도 출신 5명을 확인했다.

또한 오사카에서 오키나와로 강제 연행된 제주도 출신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었으나 미군에 의해 포로로 잡혀서 생존한 사실도 확인했다.

국가기록원에 소장된 명부자료를 통해 본 제주인 강제동원 현황은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의 요청에 의해 1만 97명에 해당하는 기록물 사본을 색인목록과 함께 디지털 파일 형태(DVD)로 제공했다. 그러나 중복 등 문제점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제주인 해군군속의 출신지역은 806명 중 본적지가 기재되어 있지 않은 11명을 제외하고  제주읍에서 가장 많은 177명(22%)이 동원·투입됐고 한림면(135명, 17%), 애월면(82명, 11%), 구좌면(78명, 10%), 서귀면(72명, 9%) 등에서 다수의 인원이 동원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동원 시기는 진주만 기습(1941년 12월 7일)으로 미국과의 전쟁이 시작되기 이전인 1940년 4월과 1941년 11월에도 동원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제주인을 포함한 조선인 군속 동원의 특징 중의 하나는 ‘지역집단동원’이다. 분석대상 806명 중 일본 지역으로 투입된 인원은 404명, 그 외의 지역으로 투입된 인원은 402명으로 유사한 비율을 보인다.

일본 지역에 가장 많은 63.4%가 투입되었으며, 한반도 지역 10.1%, 태평양 지역 30%, 동남아시아 지역 3.2%가 투입되었다. 일본 지역과 그 외 지역으로의 투입 비율이 전체에 비해 약하지만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고 할 것이다.

마샬 제도의 웻체(Wetje)로 투입된 59명의 경우이다. 도라쿠(トラック, 현 Chuuk)에 투입된 60명 다음으로 많은 인원이 투입됐다.

이 웻체에 투입된 전체 조선인 해군군속의 규모는 총 225명으로 59명의 제주인이 약 27%를 차지했다. 반면에 서부 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많은 조선인 해군군속이 투입된 도라쿠(トラック, 현 Chuuk제도)의 경우 총 5천827명이 투입돼 제주인 60명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1%를 겨우 상회하는 수준이다.

일본지역으로 투입된 제주인들의 현황을 보면 152명의 인원이 투입되는 히로시마의 경우, 주로 구레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히로, 요시우라, 야노우라 등의 도시들은 구레 인근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구레 지역으로 투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세 번째로 많은 41명이 교토부 마이즈루에, 네 번째로 많은 22명이 가나가와현 요코스카에 투입됐다.

제주인 806명이 투입된 부대·부서는 약 84개로 해군시설부, 해군연료창, 특설해군설영대, 해군 공창, 해군항공창, 해군공작부, 특별근거지대·특설근거지대, 방비대, 경비대 등이다.

806명 중 133명의 사망 내역이 확인됐다. 제주인 사망 현황 중 선박 침몰로 인한 사망이 다수를 차지했다. 제주인이 사망하는 침몰 선박은 하치로우가타마루(八郞潟丸), 하쿠요마루(白陽丸), 고요마루(香洋丸), 조와마루(長和丸), 가마쿠라마루(鎌倉丸) 등이 확인됐다.

제주인 12명이 사망하는 하쿠요마루(白陽丸) 침몰의 경우 조선인은 총 322명이 사망했다. 오사카상선(大阪商船) 소속인 하쿠요마루(5천742 총톤)는 해군에 징용된 B선으로 1944년 10월 가타오카만에서 가솔린, 화차(貨車), 식료품 등의 화물 약 4천톤을 탑재하고 23일 군함의 호위를 받으며 홋카이도 오타루로 항해 하던 중 25일 호로무시로도(幌筵島) 서방 약 530km 해상에서 미 잠수함 씰의 어뢰 공격을 받아 침몰하였다.
 
다음으로 제주인 4명의 사망이 확인되는 코요마루(香洋丸)의 침몰에서 사망하는 조선인들은 총 88명에 이른다.

하치로가타마루의 경우 1명의 제주인 사망이 확인되는데, 총 486명의 조선인 해군군속이 사망했다. 네 번째로 1945년 5월 1일 침몰한 조와마루(長和丸)로 총 50명의 조선인이 사망하는 가운데 제주인 2명이 사망했다.

한편 주요 ‘명부자료’를 보면 ▲왜정시피징용자명부에 총 수록 건(명)수는 28만5천771건으로 이중 제주인은 1천583건으로 나타났다.

▲일정시 피징병자급애국운동자 명부에는 제주인 건수는 1천718건으로 조사됐다. ▲군속선원명표에는 전체 7천 46건 중 제주인 건수는 1천197건이었다. ▲유수명부는 전체 16만 148건 중 제주인은 840건으로 나타났다. ▲임시군인군속계에는 전체 4만6천164건 중 제주인은 976건 이었다. ▲피징용사망자연명부에는 전체 2만1천692건 중 제주인은 619건으로 조사됐다.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결과에는 전체 6만9천766건 중 제주인은 377건으로 조사됐다. ▲조선인육군군인조사에서 제주인은 154건으로 나타났다. ▲유골명부(구육군부, 구해군부, 일반부)에 제주인은 154건으로 나타났다. ▲구해군군인이력원표에는 전체 2만1천420건 중 제주인은 304건으로 나타났다. ▲기타 ‘명부자료’ 중 공원명표에는 전체 573건 중 제주인은 1건, ▲공원명부등육군관아(수품양말병기보급창등)에는 전체 363건 중 제주인은 3건(2명)로 나타났다.

  
◆ 참고자료
▶왜정시피징용자명부 및 일정시피징병자급애국운동자명부는 한국 정부가 일본과 수교 문제를 협의하면서 대일 배상청구의 근거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57~59년 사이에 노동청에서 작성·생산한 문서이다.

▶일정시 피징병자급애국운동자 명부는 2013년 주일한국대사관 이전 과정에서 ‘관동지진피살자명부’, ‘3·1운동피살자명부’ 등과 함께 발견된 3종의 자료 중의 하나이다. 1952년 내무부에서 생산된 자료이다. 그 형태는 ‘왜정시 피징용자 명부’과 일부 항목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거의 유사하다. ‘왜정시피징용자명부’에 게재된 인원 상당수가 중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국가기록원 홈페이지 ‘일제 강점기 피해자 명부’ 코너의 ‘명부소개’에 대한 내용에는 이와 관련된 내용이 존재하지 않는다.

▶군속선원명표는 육군 선원(군속)의 개인별 자료이다. 전시체제기에 일본 정부 기관이 작성한 1차 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유수명부’는 육군의 각 부대별로 작성하는 자료로, 군인과 군속이 함께 기재되어 있다. 사망자 중 야스쿠니(靖國)에 합사된 경우, ‘합사완료(合祀濟)’라는 표기가 존재하며, 공탁금 번호(예 : 供16781)가 기재된 경우도 있다. 패전 이후에 작성된 자료이기는 하나, 1차 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임시군인군속계는 1945년 3월 1일 0시 현재 일본 육군에 동원되어 있던 군인·군속에 대하여 호주(또는 가족)가 면장 앞으로 보낸 신고서. 다른 문서들과의 중복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전시체제기에 일본 정부의 명령으로 작성된 1차 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피징용사망자연명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한일협정)이 체결된 이후, 일본 정부가 작성하여 1971년 10월 한국 정부에 제공한 자료이다.

▶조선인 노동자에 관한 조사는 1946년 일본 후생성이 각 현에 전시체제기에 조선인 노무자를 사용한 각 작업장별로 관련 내용을 조사·보고할 것을 지시한 결과로 만들어진 자료이다.

▶조선인육군군인조사는 일본의 패전 이후 일본 지역에서 1972년 설립된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이하 진상조사단)이 작성한 자료이다. 진상조사단은, 아시아태평양전쟁 기간 중 일본에 의한 강제동원 사실을 문헌·현지조사, 증언 수집 등과 같은 객관적인 조사를 통해 그 진상을 규명하고, 남북한과 일본간 우호와 화해를 목적으로 오키나와에서 결성되었고, 이후 일본 25개 지역에 지역조사단을 두고 활동하는 일본의 시민단체이다.

▶유골명부(구육군부, 구해군부, 일반부)는 육군과 해군, 그리고 일반(노무자)으로 구분한 이후, 출신지역별로 기록을 편철하고 있다. 정확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으나, 구성과 형태 상으로 볼 때 피징용사망자연명부에 수록된 인원 중 유골이나 유품이 있는 경우를 기재한 것으로 추정된다. 피징용사망자연명부와 유사한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기존의 자료에서 사망자와 유골·유품이 존재하는 인원만을 추려서 작성한 2차 또는 3차 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또 이 때문에 다른 자료의 내용과 중복된다.

▶구해군군인이력원표는 해군 군인으로 동원된 조선인의 개인별 기록 자료이다. 국가기록원은 ‘구해군군속신상조사표’와 합해 “해군군속자명부”라는 자료철명으로 관리하고 있다.

▶'공원명표'는 사가미(相模)육군조병창과 오사카(大阪)육군조병창으로 동원된 조선인 군속에 대하여 작성한 개인별 신상카드로써, 일본어 가나 발음하는 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1993년 10월 외무부가 일본정부로부터 인도받은 명부로써 ‘工員名簿(공원명부)’(3권, 363명), ‘陸軍運輸部軍屬名簿(육군운수부군속명부)’(8권, 1천166명)와 함께 국가기록원이 정리하는 과정에서 ‘공원명표 등’이 명명한 자료이다. 자료상의 한계로 사가미조병창에 투입된 조선인 공원의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다.

▶공원명부등육군관아(수품양말병기보급창등)는 오사카, 나고야(名古屋), 고쿠라(小倉)육군병조창과 다카기(鷹來)제조소 및 기타 여러 육군 관아에 동원된 조선인 명부들이 부서 별로 편철되어 있다. 이 명부에 게재된 제주인들이 투입된 부서가 본창 혹은 지창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航空廠’ 부분의 명부에는 총 42건이 등재되어 있으나 실제 인원수는 40명이다. 그 중 2명이 제주인이다. 국가기록원에서 제공한 엑셀 자료에는 3명으로 확인되나, 1명은 부정확하게 쓰여진 한자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중복된 결과이다.

고병수 기자  bsko74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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