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 712명(20%) 가장 많았고 ‘한림’ 614명(17%), ‘제주’ 505명(14%), ‘성산’ 353명(10%), ‘조천’, ‘애월’ ‘대정’ ‘서귀’, ‘남원’ 순
사망자 명부 군인·군속 622명 육군 243명, 해군 379명...강제노역자 중 제주도 출신 사망자 185명

오키나와 평화공원 ‘평화의 초석’ 각명비 전경.

이번 4번째 [연재] 일제강점기 재일제주인 강제동원 현황 및 실태조사(4)는 일제 강제연행 현황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일제 강제연행 재일제주인 이주경로 추적(저자 박찬식, 고광명)”에 따르면 1930년대 후반 이후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는 이른바 ‘조선인 강제연행’이라는 노동력 동원 정책을 강행했다고 밝혔다.

초기에는 조선인의 민족적 저항을 두려워 ‘모집’ 형식으로 시작했으나 점차 ‘관(官)알선’, ‘징용’ 등의 형식으로 동원해 갔는데 국가 권력에 의한 전시 노무동원이었다는 것.

강제동원 피해자 수는 학자와 연구자, 그리고 통계자료에 따라 그 수치가 명확하지 않다. 한국 정부(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대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추계한 인원(중복 포함)은 780만4376명으로 집계됐다.

그 중 군인(지원·징병 포함)이 20만9279명, 군무원이 6만 668명(국민징용자 대상 제외), 노무자가 753만4429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태평양전쟁 초기인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한국 국내, 남양군도, 만주, 사할린 등지에 동원된 것으로 나타났다.

조선총독부나 대장성(大蔵省) 관리국 등의 자료를 통해 보더라도 1939년에서 1945년 사이에 이르는 시기, 이른바 ‘국민동원 계획’에 의해 일본 및 사할린, 남양군도 등으로 강제 연행당한 조선인 노동자 수가 약 72만 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탄광광산, 금속광산, 토목건축, 항만운수, 기타 공장 등지로 동원된 것이다. 전체 동원자의 47.3%가 석탄광산, 그리고 28.4%가 공장 등에 강제 연행되었는데, 이는 일본 자본주의의 저임금 구조를 지탱하면서 전쟁 수행을 목적으로 동원되었던 것이다.

2011년 12월 31일 기준으로 강제동원 피해신고 접수는 22만6638건으로 군인 3만7205건, 군무원 2만9430건, 노무자 15만7618건, 위안부 334건 등으로 나타났다.

제주도는 2890건(군인 423건, 군무원 527건, 노무자 1,910건, 위안부 1건, 기타 24건, 미 표시 5건)을 접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피해신고 심의・결과에 따르면 전국적으로는 21만9489건이 인정되었는데 이들 가운데 군인 3만2607건, 군무원 2만9430건, 노무자 14만4764건, 위안부 334건으로 나타났다. 제주도 출신자는 2852건(군인 361건, 군무원 569건, 노무자 1,847건, 각하・기각・판정불능 75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제 강점기 제주인 많은 수가 강제동원현황을 당했으나 피해가 접수되고 일본정부가 해방 후 태우다 남은 문헌 등에 의한 국가기록원 통계에 ‘제주’로 검색된 피징용자는 총 8715명(군인·군속, 노동자 등 일부 중복)으로 등록됐다.

지역별로 검색하면 ‘구좌’가 712명(20%)으로 가장 많았으며, ‘한림’  614명(17%), ‘제주’ 505명(14%), ‘성산’ 353명(10%), ‘조천’ 300명(8%), ‘애월’ 266명(8%), ‘대정’ 166명(5%), ‘서귀’ 139명(4%), ‘남원’ 134(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사망자 명부에는 군인·군속이 622명으로 이 중에 육군이 243명, 해군이 379명으로 나타났다. 이들 대부분은 북태평양, 남양군도, 대만, 필리핀, 자바, 괌으로 이동 중 전함(戰艦) 등에서 사망한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강제노역자 중 제주도 출신 사망자는 185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홋카이도, 지시마(千島), 나가사키, 오키나와, 와카야마, 후쿠오카 등에서 사망했다. 이 외에도 효고(兵庫)현에 강제 동원된 제주도 출신은 239명으로 확인되었는데 주로 하리마(播磨)조선소, 후지(富士)산업 등 군수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문헌 이외 수많은 제주인이 일본 등과 태평양전쟁에 동원됐다는 사실이 구전 등으로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또한 이름도 모른 채 이국땅에서 죽어 간 수많은 제주인들의 명예회복이 꼭 필요하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일본의 역사 연구가 A씨는 “이름만 밝혀져도 행복한 것이다”라며 성도, 이름도, 고향도 알려지지 않은채 억울한 죽음이 너무 많다는 것을 이 말로 대신했다.

한편 오키나와전(沖縄戦)에서 20여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키나와 평화공원 ‘평화의 초석’(平和の礎) 각명자 일견표(2017년 6월 23일 현재)에는 오키나와 14만 9456명, 오키나와 이외 일본 본토 7만 7426명, 미국 1만 4009명, 영국 62명, 대만 34명, 한국 380명, 북한 82명 등 24만 1468명의 전사자 이름이 각명되어 추모되고 있었다.

한국인 380명 중 가고시마(鹿児島)에서 전사한 1명이 오키나와 인근 전투에서 전사해 이를 포함해 제주출신은 5명으로 확인됐고 계속 조사 중이다.

이들은 故 김상길, 故 강인길, 故 김보환, 故 강석봉, 故 홍여진 님이며 오키나와 평화공원에 각명비에 이름이 새겨져 추모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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