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오름, 산 등 일본동굴진지 도내전역 1000여개 마구 파헤쳐...KBC 광주방송 옥매광산 노동자 제주참혹한 강제노역 실상 타큐 제작
황석규 박사, 제주 일본동굴진지 “과거 아픈역사 없도록 교육의 장 충분"

알뜨르 비행장서 KBC광주방송과 인터뷰하는 황석규 박사.(사진제공=고병수 기자)

KBC 광주방송은 전남 일제강점기 수몰된 해남 옥매광산 광부들의 제주 강제노역에 대해 기획 특집 다큐멘터리 가제목 ‘옥매광산 아픔을 넘어’ ‘정유년 옥매산 일기’를 제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방송 취제진의 제주 탐방 가이드를 제주지역의 일본과 관련해 지속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황석규(제주다문화교육·복지연구원 이사장) 박사와 고광명(산하 재외제주인연구센터 소장) 박사가 동행해 가이드에 나섰다.
 
황석규 박사는 탐방자리인 KBC 광주방송 인터뷰에서 “태평양전쟁 중 제주도는 요새화 됐다. 제주도는 일본군 공격용 비행장 건설(알뜨르비행장)과 바다의 자살특공대인 신효(자살용 배)와 카이젠(2인용 잠수함) 등을 위한 기지구축을 통해 아시아 패권을 위한 전진기지가 됐다”고 밝혔다.

황 박사는 “일본에는 6개 결전의 장이 있었고 제주에도 7번째의 결전의 군사기지화로 제주도를 전쟁터의 결전장으로 삼아 일본본토를 사수하기 위한 결전의 장소로 사용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일본의 결 7초작전 즉 1~6개는 일본 본토, 제 7은 제주다. 일본이 제주를 군사적 요충지며 최후 전쟁의 보루로 삼아 이곳을 결전의장으로 삼으려했다. 전쟁이 이곳에서 벌어졌으면 오끼나와가 20녀만명이 죽은 것처럼 제주도민들 대부분이 사망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자폭탄에 의해 결전의 장은 이용도 못한 채 항복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시 일본군국정부가 태평양 전쟁 당시 오끼나와를 본투 사수를 위해 버렸던 것처럼 일본 본토 사수를 위해 제주도를 주요 전쟁터로 삼았다는 역사적 사실로 드러나 일본의 간악한 행태도 드러났다.

황박사는 “일본군은 7만2천여명이 제주도에 들어와 결전을 벌이기 위해 일본의 황궁이전등 대본영과 같은 지하요새화를 위한 진지 구축에 나섰다. 이때 제주도민은 15만명 정도로 그 규모를 가름할 수있다”고 밝혔다.

그는 “제주동굴진지는 오름과 악, 산 등 1000개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제주의 오름과 악, 산이 무차별적으로 파해쳐졌다”고 했다.

일본 해상 자살특공대 신효와 카이젠을 위한 동굴진지서 KBC광주방송과 인터뷰하는 황석규 박사.(사진=고병수 기자)

한편 KBC 광주방송은 해남 옥매광산 광부들은 제주동굴진지 구축으로 강제노역에 동원됐고 해방이 되자 어렵게 배편을 구해 돌아오던 중 추자도 인근에서 큰 불이 났고

사고 당시 인근을 지나던 일본 경비정이 구조에 나섰으나 구조한 137명 중 일본인 5명이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나머지 118명의 광부들은 그대로 버려둔 채 현장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이들의 참혹한 노역 현장을 취재했다.

이에 대해 황석규 박사는 “제주도에서 있었던 동굴진지 등 군사비밀 등이 알려지지 않도록 수장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오끼나와 여인들과 어린아이들도 일본 본토로 수송 중 이 같은 침몰을 당하는 등 외국사례에서와 같이 일본군에 의해 간접적인 살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황박사에 따르면 제주전역 진지동굴에는 단단한 오름과 산 등에는 숙련된 광부노동자가 필요했다는 것,

이에 옥매광산 노동자 250여명, 광양 노동자 800명, 경상도 탄광노동자 500여명 등 2000여명의 육지 노동자가 제주의 지하 요새화에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출봉 인근에 15개정도, 송악산 인근에 17개, 산 오름마다 동굴 진지가 구축됐다.

또한 화순 동굴기지에는 바다자살특공대들을 위한 동굴진지가 있었다는 것.

황 박사는 인터뷰에서 “배에 폭탄을 담아 충돌해 미국 군함을 격침하도록 하는 신효. 2인용 잠수함인 해천(일본명 카이텐) 등 가공할만한 해상 가미가제 자살 특공대를 위한 공간도 마련됐다”고 밝혔다.

황 박사는 “강제노역, 강제동원 등 육지분들이 제주에 내려와 동굴진지를 위해 어마어마하게 고생한 아픈역사가 담겨있다”며 “이제 표현할 시기가 왔다. 아무도 모르는 희생 국내 강제노역에 대해 후손들도 거의 모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잘모르는 역사를 잘 알도록 해 이제 일제에 의한 과거처럼 아픈역사가 없도록 알리는 교육의 장으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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