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1939년 기준 재일본 제주인은 4만5900여 명에서 1945년 해방 당시 10만여 명 큰 폭으로 증가했다. 이는 이 시기 일본의 제주도민에 대한 강제징병 및 징용에  따른 결과라는 학자들의 공통적인 연구결과다. 이에 그간 4.3에 매몰된 일본이주역사에서 벗어나 일제시대 징용과 징병에 의해 일본에 끌려간 고달픈 삶을 살아온 제주인의 이주경로, 삶과 애환 등을 알아보는 기획취재를 실시하게 됐다. 제주대학교 재일제주인 연구 권위자인 고광명박사의 협조로 일본 현지에서 특별기획 취재를 통해 심층 보도할 계획이다.

일제시대 일본과 제주를 오가던 기미가요마루 호.

제주대학교 고광명 박사의 연구자료에 따르면 재일제주인의 이주는 1903년 제주해녀의 일본 출가를 시초로 규슈(九州)지역을 중심으로 어로 작업을 수행하면서 이뤄졌다.

하지만 재일제주인 사회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1910년대 일본의 수탈정책에 의해 토지를 잃거나 생활 터전을 상실한 농민들이 일본 노동시장의 수요 증대에 따라 일자리를 얻어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시작됐다.

더욱이 1923년 제주도와 오사카를 연결하는 직항항로의 개설은 제주도 출신자들이 일본으로 이주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

또한 1930년 후반에 이르러 전쟁수행을 목적으로 징병․징용에 의해 강제적으로 동원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게 됐다. 이 시기는 일본의 전시체제 기간으로 1938년에 제정된 ‘국가총동원법’과 1939년에 제정된 ‘국민징용령’ 등으로 노동력 착취를 위한 징용으로 동원됐다.

1945년 이후에 들어서면서 제주 4․3사건 후유증에 따른 밀항, 그리고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1989년 해외여행 자율화 등 시대적 상황에 부응하면서 자발적으로 이주하게 됐다.

이처럼 재일제주인의 이주 초기는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통치라는 역사적 조건 하에서 진행되었지만 이후 경제적 요인을 비롯해 역사적, 정치적, 사회적 이유로 이주해 일본 사회에 정착하면서 재일제주인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좌)조선항로도(朝鮮航路圖) 우)제주도항로도(濟州島航路圖)

비록 이들의 이주 형태와 동기는 서로 다르더라도 해방을 전후해 일본 사회에서 삶을 영위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재일제주인의 정체성을 형성해 다양한 경제적 활동을 수행하면서 거주국과 고향과의 관계를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번 기획 ‘강제 징용징병 재일제주인 이주 경로추적...삶과 애환’으로 재일제주인의 이주와 관련된 기존자료를 통해 일본 사회에서 활동하는 재일제주인의 이주 시기 및 요인 등을 이주사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주와 관련된 역사적 배경을 파악하여 본다는 것은 재일제주인의 삶과 역사, 그리고 재일제주인 사회를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일본제국주의의 징용과 징병에 의해 일본에 끌려간 제주인의 이주경로, 삶과 애환 등을 제주뉴스는 특별기획으로 6월17일부터 6월20일까지 일본 오사카 현지에서 특별 취재해 연재할 계획이다.

저작권자 © 제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